기내 보조배터리 규정은 불이 안 나게 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불이 났을 때 누군가 바로 보게 하는 장치입니다. 어젯밤 에어서울 기내 화재를 저는 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경우로 읽습니다. 규정이 소용없다는 증거로는 읽지 않습니다.
그래도 물음은 남습니다. 승객은 시킨 대로 했습니다. 배터리를 파우치에 넣었고, 선반이 아니라 좌석 밑 가방에 뒀습니다. 그런데도 불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지난 1년 반 동안 쌓은 규정은 무엇을 막고 무엇을 못 막는지, 한 번은 나눠 볼 때가 됐습니다.

어젯밤 에어서울 기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9월 24일 오후 9시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다낭으로 가려던 에어서울 RS511편 기내에서 불이 났습니다. 이륙 준비 중이었습니다. 한국경제·아시아경제 등 보도를 맞춰 보면, 불은 한 승객이 좌석 아래 둔 가방에서 시작됐고 가방 안에는 파우치에 담긴 보조배터리가 있었습니다. 승객이 단락 방지 조치를 해 뒀는데도 불이 났다고 전해져, 항공사와 당국이 발화 경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승무원들이 불을 껐고 소방차가 출동했습니다. 탑승자는 승객 221명, 승무원 7명이었습니다. 일부 승객이 호흡기 불편을 호소했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에어서울은 대체 항공기를 띄웠고, 승객 219명이 옮겨 타 예정보다 2시간 50분 늦게 출발했습니다. 두 명은 스스로 탑승을 포기했습니다. 추석 연휴 첫 밤이라 가족 단위 승객이 많았다고 합니다.
원인은 아직 조사 중입니다. 아래에서 쓰는 ‘내부 합선’은 이번 사고의 결론이 아니라, 파우치를 쓰고도 불이 날 수 있는 경로를 설명하려고 가져온 지난해 사례입니다.
파우치에 넣었는데 왜 불이 날 수 있습니까?
파우치와 절연테이프가 막는 건 바깥 합선입니다. 배터리 단자가 가방 속 열쇠나 동전, 다른 배터리 단자에 닿으면 전류가 한꺼번에 흘러 열이 납니다. 2025년 3월 국토교통부 대책이 ‘단자를 절연테이프로 덮거나 보호 파우치에 넣으라’고 한 것은 이 경로를 끊으려는 것입니다.
배터리 안에서 생기는 합선은 다릅니다. 얇은 분리막이 찢어지거나 제조 불량이 있으면 양극과 음극이 안에서 맞닿습니다. 그러면 파우치에 넣든 테이프를 감든 열이 납니다. 지난해 1월 28일 김해공항 에어부산 BX391편 화재가 그랬습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3월 1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기내에서 나온 보조배터리 잔해에서 여러 개의 전기적 용융 흔적을 찾았고 ‘절연 파괴’로 인한 내부 합선이 발화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규정을 지켰는데 불이 났다’는 문장은 모순이 아닙니다. 규정의 한 조각은 처음부터 이 경로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리튬 배터리는 아주 드물게, 스스로 불이 납니다. 규정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드문 일이 어디서 일어나게 하느냐를 정하는 것입니다.
비행기 안 배터리 불은 얼마나 자주 납니까?
한국은 공개된 숫자가 적습니다. 국토교통부가 이연희 의원실에 낸 자료로는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국적기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가 13건이었습니다. 2020년 2건, 2021~2022년 0건, 2023년 6건, 2024년 8월까지 5건입니다. 대부분 연기나 그을음에서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 뒤의 연도별 건수는 제가 찾은 공개 자료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저율은 미국 자료로 봅니다. 이건 미국 연방항공청(FAA) 숫자입니다. FAA는 여객기·화물기·지상 조업에서 확인한 리튬배터리 발연·발화·과열 사고를 한 건씩 목록으로 냅니다. 정보공개청구로 공개된 2023년 12월 28일판 목록을 연도별로 직접 셌습니다. 2015년 16건이던 것이 2022년 74건이 됐습니다. FAA 연간 집계로는 2023년 77건, 2024년 89건, 2025년 93건입니다. 10년 사이 여섯 배 가까이 됐습니다.

2025년 93건은 일주일에 1.8건꼴입니다. 기기별로는 보조배터리·예비 배터리가 31건(33%)으로 가장 많았고, 전자담배 22건, 휴대전화 21건, 노트북 8건이었습니다. FAA는 이 목록이 ‘알고 있는 사고’일 뿐 전부가 아니라고 스스로 적어 둡니다. 신고 방식도 해마다 바뀌었습니다. 늘어난 몫 가운데 얼마가 실제 증가이고 얼마가 더 잘 세게 된 몫인지는 이 목록으로 가를 수 없습니다.
불이 어디서 나느냐가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FAA 목록에서 여객기의 ‘배터리팩·예비 배터리’ 사고만 골랐습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 111건입니다. 사고 설명 문장에 적힌 단어로 어디서 났는지 나눴습니다. 좌석 주변(손에 들고 있거나, 좌석 밑 가방·앞주머니에 있거나, 충전 중이던 것)이 67건, 지상 조업·위탁 수하물·보안검색 중에 발견된 것이 29건, 머리 위 선반이 3건, 설명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이 12건이었습니다.

좌석 주변 67건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봤습니다. 44건은 승무원이 배터리를 열 차단 격리 가방에 넣어 끝냈습니다. 나머지도 물을 붓거나 소화기를 쓰거나 기내 밖으로 들고 나가 정리했습니다.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한 것은 3건이었습니다. 옆 사람이 냄새를 맡고 승무원이 곧바로 손에 쥘 수 있는 곳에서 난 불은 대부분 거기서 끝났습니다.
선반은 3건뿐인데 그중 1건은 2022년 승객 전원을 터미널로 대피시켰습니다. 지난해 에어부산도 30열 왼쪽 선반에서 처음 불길이 보였습니다. 탑승자 176명은 모두 비상 탈출했고 기체는 크게 탔습니다. 선반은 닫혀 있어 연기가 새어 나올 때쯤엔 이미 번져 있습니다. 화물칸은 더 합니다. 거기서 난 불은 비행 중에 사람이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이 분류는 제가 영어 설명문에서 ‘위탁 가방’, ‘선반’, ‘좌석’, ‘승무원’ 같은 단어를 찾아 나눈 것이라 몇 건씩은 틀렸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보조배터리 불의 결과를 가른 것은 불이 났느냐보다 어디서 났느냐였습니다.
그러면 쌓인 규정은 각각 무엇을 막습니까?
2025년 1월 에어부산 이후 규정은 네 번 더해졌습니다. 저는 이걸 한 덩어리로 보지 않고, 무엇을 막는지로 나눠 봅니다.
| 규정 | 막는 것 | 어젯밤 사고에서 |
|---|---|---|
| 위탁 수하물 금지 | 화물칸 — 아무도 못 보는 곳의 불 | 해당 없음(기내 반입) |
| 선반 보관 금지 | 발견 지연 — 닫힌 칸 안에서 번지는 불 | 지켰다 · 좌석 밑 가방 |
| 파우치·절연테이프 | 바깥 합선 | 지켰다 · 그래도 발화 |
| 기내 사용·충전 금지 | 충전 중 과열 | 이륙 전 · 충전 여부 미확인 |
| 1인 2개 제한 | 발화 확률(개수에 비례) | 영향 작음 |
| 온도감지 스티커·격리보관백 | 발견과 진화 속도 | 승무원 진화 · 병원 이송 0 |
이렇게 놓으면 어젯밤 사고는 규정이 뚫린 게 아니라, 파우치라는 한 칸이 원래 못 막는 경로로 불이 났고, 좌석 밑이라는 다른 칸이 제 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28명 중 병원에 간 사람이 없었고, 비행기는 2시간 50분 늦게 떠났습니다. 에어부산 기체를 떠올리면 세 시간이 안 되는 지연은 싼 값입니다.
이 점은 규제를 늘리자는 쪽이 맞습니다. 제 배터리가 옆자리 220명을 위험하게 만드는 건 제 선택만으로 끝나지 않는 일입니다. 값싼 배터리의 셀 품질을 승객이 알 방법도 없습니다. 이런 곳의 규칙은 시장의 적이 아니라 시장이 굴러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고, 숫자도 그렇게 말합니다.
규정을 어긴 배터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오히려 걱정해야 할 곳은 따로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집계로 올해 설 연휴(2월 13~18일) 출발편 3,139편에서 보조배터리 규정 위반이 2,655건 적발됐습니다. 한 편에 0.85건, 거의 모든 비행기에 한 명꼴입니다. 그중 2,502건(94.2%)이 위탁 수하물에 넣었다가 걸린 것이었습니다. 기내 휴대 용량·개수 초과는 153건(5.8%)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불은 좌석 밑에서 납니다. 보이지 않는 불은 화물칸에서 납니다. 규정 위반의 열에 아홉이 보이지 않는 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2,655건은 보안검색에서 걸러진 숫자입니다. 그 그물이 좌석 밑 규정보다 더 많은 불을 막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새 규정을 더하는 것보다 이 그물을 빠뜨리지 않는 쪽이 싸게 먹힙니다.
하나 더 적습니다. 올해 1월 항공사들이 기내 사용을 금지한 것은 법이 아니라 권고 형식이었습니다. 승객이 가방 안에서 몰래 충전하는 것까지 승무원이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그때 나왔습니다. 지킬 수 없는 규정은 지키는 사람만 불편하게 합니다. 규정의 개수보다 규정이 무엇을 줄였는지가 궁금합니다. 그 답을 하려면 국적기 기내 발화 건수를 해마다 공개해야 합니다. 2024년 8월 이후 숫자는 제가 찾지 못했습니다.
승객은 무엇을 하면 됩니까?
어젯밤 승객이 한 것이 기준입니다. 보조배터리는 부치는 짐에 넣지 않습니다. 선반에 올리지 않고 몸이나 좌석 앞주머니, 좌석 밑 가방에 둡니다. 단자는 파우치나 테이프로 덮습니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가방에서 타는 냄새가 나거나 배터리가 뜨겁거나 부풀어 있으면 직접 해결하려 하지 말고 바로 승무원을 부르는 것입니다. FAA 목록 67건 중 대부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파우치에 넣었다고 안심하지는 않는 편이 맞습니다. 파우치는 바깥 합선용입니다. 배터리 자체가 오래됐거나 부풀었거나 한 번 떨어뜨린 적이 있다면 그 배터리는 집에 두고 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규정입니다.
규정은 불을 없애지 못합니다. 불이 날 자리를 정할 뿐입니다. 어젯밤 불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자리에서 났고, 그래서 세 시간이 안 되는 지연으로 끝났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제 보조배터리는 책상 위에서 충전 중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보조배터리를 파우치에 넣으면 불이 안 나나요?
아닙니다. 파우치나 절연테이프는 단자가 열쇠·동전 같은 금속에 닿아 생기는 외부 합선을 막습니다. 배터리 안에서 생기는 내부 합선은 못 막습니다. 2025년 1월 에어부산 화재도 국과수가 보조배터리 내부 합선을 원인으로 봤고, 2026년 9월 24일 에어서울 화재도 파우치에 든 배터리였습니다.
비행기에 보조배터리는 몇 개까지 가져갈 수 있나요?
2026년 4월 20일 바뀐 기준으로 국내 항공사들은 대체로 160Wh 이하 보조배터리를 1인당 2개까지 기내에 들고 타게 하고, 위탁 수하물에는 넣을 수 없습니다. 선반이 아니라 몸이나 좌석 앞주머니·좌석 밑 가방에 두고, 기내에서 쓰거나 충전하지 않아야 합니다. 항공사마다 세부 기준이 달라 출발 전 공지를 확인하는 게 안전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보조배터리 불은 얼마나 자주 나나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확인한 기내·화물 리튬배터리 발연·발화·과열 사고는 2025년 93건, 일주일에 1.8건꼴이고 그중 31건이 보조배터리·예비 배터리였습니다. 한국 국적기는 국토교통부 자료로 2020년부터 2024년 8월까지 13건이 보고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