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 ·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추경호 구형 징역 20년, 계엄 해제 표결 그날 국민의힘 108명 중 18명만 표결했습니다 — 11월 18일 선고를 앞두고 표결 기록 190명을 놓고 저는 이렇게 봅니다

내란특검이 9월 30일 추경호 대구시장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1심 선고는 11월 18일입니다. 2024년 12월 4일 계엄 해제 표결 기록을 셌습니다. 국민의힘 108명 중 18명, 그 밖 192명 중 172명이 표결했고 국민의힘 표가 없었어도 가결선 151을 21명 넘었습니다. 표결한 18명도 8일 뒤 특검법엔 11명이 반대했습니다. 같은 특검의 15년 구형은 1심에서 23년이 되기도, 7년이 되기도 했습니다.

자료 사진(생성) · 특정 기관과 무관. 반원형 의석은 재적 300석이었고, 그날 밤 190석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료 사진(생성) · 특정 기관과 무관. 반원형 의석은 재적 300석이었고, 그날 밤 190석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줄 답 — 내란특검은 2026년 9월 30일 추경호 대구시장에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추 시장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1심 선고는 11월 18일입니다. 2024년 12월 4일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 기록을 세면 당시 국민의힘 108명 중 18명, 그 밖 192명 중 172명이 표결했습니다. 국민의힘 표가 없었어도 172명으로 가결선 151명을 21명 넘었습니다. 구형은 판결이 아니어서, 같은 특검의 15년 구형이 1심에서 23년(한덕수)이 되기도 7년(이상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구형은 판결이 아닙니다. 그래도 표결 기록은 판결과 상관없이 남아 있습니다. 조은석 내란특검은 9월 30일 추경호 대구시장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밤 국민의힘 원내대표로서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번 바꿔 소속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막았다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입니다. 추 시장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11월 18일에 선고합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법원이 정합니다. 저는 그 판단을 대신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날 밤 국회가 남긴 기록을 세는 일입니다. 열린국회정보에는 그날 본회의에 있던 의원 한 명 한 명의 표가 남아 있습니다. 그 기록을 놓고, 특검이 말하는 것과 추 시장이 말하는 것 중 숫자로 확인되는 대목과 확인되지 않는 대목을 가르겠습니다.

한밤 비어 있는 의회 본회의장의 반원형 의석
자료 사진(생성) · 특정 기관과 무관. 반원형 의석은 재적 300석이었고, 그날 밤 190석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추경호 구형 20년, 무슨 혐의입니까?

혐의 이름은 내란 중요임무 종사입니다. 특검이 결심공판에서 든 사실관계는 이렇습니다. 계엄 선포 직후 원내대표가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하면서 장소를 국회, 국민의힘 당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다시 당사 3층으로 네 차례 공지했습니다. 바꾼 횟수로는 세 번입니다. 특검은 그 사이 추 시장이 홍철호 당시 정무수석, 한덕수 당시 총리와 통화해 계엄이 반대 속에 강행됐다는 설명을 들었고,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의 2분 5초 통화에서 협조 요청을 받아 수락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집권 여당 의원 108명의 표를 묶어 두는 일에 앞장섰다’고 했습니다.

추 시장의 말은 반대입니다. 계엄을 미리 알지 못했고, 대통령에게서 표결을 막아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없으며, 국회 출입이 통제된 상황에서 의원들을 일단 모아 의견을 들으려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최후진술에서는 ‘돌이켜보면 더 세심하게 소통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아쉬움과 의도는 구분해 달라’고 했습니다. 국민께 송구하다는 말과 ‘정치 구형’이라는 말이 같은 날 나왔습니다.

여기서 두 쪽이 다투는 것은 통화의 내용과 장소를 바꾼 의도입니다. 그건 통화 기록과 증언으로 법정이 가릴 일이고, 저에게는 그걸 확인할 자료가 없습니다. 다만 두 쪽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날 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대부분은 본회의장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는 제가 셀 수 있습니다.

그날 표결 기록에는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의안 2206197)은 재적 300명 중 190명이 표결해 찬성 190, 반대 0, 기권 0으로 가결됐습니다. 헌법 제77조 제5항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이 해제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300명의 과반은 151명입니다. 190명은 그보다 39명 많았습니다.

열린국회정보의 의원별 표결로 당시 국민의힘 의원 108명을 따로 셌습니다. 표결한 사람은 18명, 16.7%입니다. 90명은 ‘불참’으로 남았습니다. 국민의힘이 아닌 의원은 192명이었고 그중 172명, 89.6%가 표결했습니다. 나머지 20명도 불참입니다. 우리 데이터베이스는 의원의 소속을 지금 기준으로 적기 때문에 국민의힘 표결자는 17명으로 나오는데, 그 뒤 민주당에 입당한 김상욱 의원 한 명을 당시 소속으로 되돌리면 18명입니다. 보도된 숫자와 같습니다.

당시 소속 재적(명) 표결(명) 표결 비율 불참(명)
국민의힘 108 18 16.7% 90
그 밖 정당·무소속 192 172 89.6% 20
전체 300 190 63.3% 110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 참여를 국민의힘과 그 밖으로 나눈 막대 차트
2024년 12월 4일 계엄 해제 표결. 국민의힘 108명 중 18명, 그 밖 192명 중 172명이 표결했습니다. 국민의힘 표를 빼도 172명으로 가결선 151을 넘었습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적어 둡니다. 표결 기록은 ‘불참’만 적습니다. 그 사람이 당사에 있었는지, 국회 본청의 다른 방에 있었는지, 경찰이 막은 정문 밖에 있었는지는 적지 않습니다. 국민의힘이 아닌 의원 20명도 불참으로 남았는데, 그날 밤 국회 출입은 경찰이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90명이라는 숫자를 그대로 ‘표결을 거부한 90명’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이 숫자가 말하는 건 결과이지 이유가 아닙니다. 이유는 법정이 다룹니다.

국민의힘이 모두 왔다면 결과가 달랐습니까?

결과는 같았습니다. 산수로 확인됩니다. 190명에서 국민의힘 18명을 빼면 172명입니다. 국민의힘 표가 0이었어도 가결선 151명을 21명 넘었습니다. 추 시장 쪽 변호인이 ‘민주당 자체로 151표를 확보할 수 있었으므로 108명의 집결 장소를 바꿔도 해제를 막을 수 없었다’고 한 대목은 숫자로는 맞습니다.

그런데 같은 숫자를 거꾸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유가 21명이었다는 건, 국민의힘이 아닌 의원 중 21명이 더 정문을 못 넘었다면 결의안이 그 시각에 성립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날 밤 이미 20명이 표결 기록에 없었습니다. 반대쪽 패널이 ‘당시엔 민주당 의원이 모두 본회의장에 도착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고 한 것도 이 21명을 두고 한 말입니다. 결과가 같았다는 사실이 행위 당시의 의도를 지우는지는, 제가 아니라 법원이 형법의 언어로 판단할 문제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여유가 넉넉하지 않았다는 것까지입니다.

자정 넘은 정부 청사의 빈 대리석 복도와 닫힌 나무 문들
자료 사진(생성) · 특정 기관과 무관. 특검은 추 시장이 본회의장에서 2분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록에 남은 건 걸음이 아니라 표입니다.

표결한 18명은 누구였고, 그 뒤 어떻게 표결했습니까?

당시 국민의힘 소속으로 그날 표결한 18명은 곽규택, 김상욱, 김성원, 김용태, 김재섭, 김형동, 박수민, 박정하, 박정훈, 서범수, 신성범, 우재준, 장동혁, 정성국, 정연욱, 조경태, 주진우, 한지아 의원입니다. 그중 장동혁 의원은 지금 국민의힘 대표입니다.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 본인의 기록은 ‘불참’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 시각 국회 안에 있었습니다. 국민의힘 대변인은 추 시장이 국회의장과 협의한 시점보다 의장의 공지가 빨랐고, 본인도 함께 표결하려 했다는 취지로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 18명을 ‘당을 떠난 표’로 읽는 해석이 맞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8일 뒤인 12월 12일 내란 특검법(의안 2206291) 표결과 겹쳐 셌습니다. 12월 4일에 표결한 18명 중 특검법에 찬성한 사람은 김재섭·김용태·한지아 세 명이고, 11명이 반대, 4명이 불참했습니다. 12월 4일에 불참한 90명은 찬성 2명, 반대 75명, 기권 2명, 불참 11명입니다. 그날 특검법에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다섯이었고, 나머지 둘인 김예지·안철수 의원은 12월 4일 표결 기록에 없습니다.

계엄 해제 표결 참여 여부별 특검법 찬반 막대 차트
12월 4일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18명과 불참한 90명이 12월 12일 내란 특검법에서 어떻게 표결했는지. 참여한 18명도 11명이 반대했습니다.

이 교차표가 말하는 건 이렇습니다. 계엄 해제에 손을 든 것과 특검에 반대한 것이 같은 사람 안에서 함께 갔습니다. 둘은 다른 질문이었습니다. 계엄 해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갈 것인가’였고, 특검법은 ‘누가 어떤 범위로 수사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니 12월 4일 본회의장에 간 18명은 당론을 버린 사람들이 아니라 그 시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었다고 저는 읽습니다. 그리고 원내대표가 가진 의원총회 소집권은 바로 그 자리로 사람을 모을 수도 있는 권한이었습니다.

구형 20년은 얼마나 무거운 숫자입니까?

구형은 검사가 재판부에 ‘이만큼 달라’고 한 숫자입니다. 같은 특검이 같은 혐의로 기소한 사람들에게서 구형과 1심 선고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면 그 성격이 보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는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는데 1월 21일 1심은 23년을 선고했습니다. 8년을 더 줬습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15년을 구형받았는데 1심은 7년이었습니다. 8년을 덜 줬습니다. 같은 15년에서 출발해 23년과 7년으로 갈렸습니다.

구형과 1심 선고 형량을 나란히 놓은 막대 차트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구형과 1심 선고. 한덕수 전 총리 15년→23년, 이상민 전 장관 15년→7년. 추경호 대구시장 20년 구형의 1심은 11월 18일입니다.

그러니 20년이라는 숫자로 11월 18일을 미리 읽을 수는 없습니다. 특검은 ‘앞서 중형을 선고받은 내란 가담자들과 비교해도 책임이 가볍지 않다’고 했고, 추 시장은 ‘터무니없는 정치 구형’이라고 했습니다. 둘 다 판결이 아닙니다. 보도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추 시장은 시장직을 잃습니다. 확정은 1심이 아니라 마지막 심급의 일입니다. 그 전까지는 무죄 추정이 그대로입니다. 저는 이 원칙을 상대 진영 사람에게도, 제 진영 사람에게도 같은 크기로 적용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저는 보수에 표를 찍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대목은 더 짧고 차갑게 적습니다. 보수가 지키겠다는 것 가운데 법치가 있습니다. 법치의 가장 기본은 헌법이 정한 절차대로 일이 굴러가는 것이고, 계엄 해제 요구는 헌법 제77조가 국회에 맡긴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날 밤 그 절차를 밟으러 본회의장에 간 여당 의원은 108명 중 18명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국회의장이 본회의 집결을 공지한 뒤에도 집권당 원내대표가 소속 의원들에게 당사 집결을 안내했다는 사실은 추 시장 쪽도 인정합니다. 국민의힘 대변인이 방송에서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다투는 건 그 이유입니다.

제 잣대 첫째는 말과 표결이 맞는가입니다. 추 시장은 그날을 ‘정치적 문제는 국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저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국회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본회의장에서 표를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추경호 의원의 표결 기록은 ‘불참’입니다. 8일 뒤 특검법 표결도 ‘불참’입니다. 말과 기록이 어긋나는 자리를 저는 그대로 적어 둡니다. 그 어긋남이 범죄인지는 제가 아니라 11월 18일 법정이 말할 것입니다.

반대편에도 하나 적습니다. 특검은 결심에서 ‘헌법을 배신하면 어떤 죗값을 치르는지 만천하에 보여 달라’고 했습니다. 형량은 본보기를 보이려고 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한 일의 크기로 정하는 것입니다. 한덕수 전 총리 사건에서 1심이 구형보다 8년을 더 준 것처럼, 법원은 검사의 말이 아니라 증거로 숫자를 정합니다. 저는 그 과정을 믿는 쪽에 겁니다. 그게 제가 이해하는 보수의 법치입니다.

새벽 도심 오피스 빌딩 회의실의 빈 접이식 의자 줄
자료 사진(생성) · 특정 장소와 무관. 의원총회가 열릴 수 있는 방은 여럿이었고,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는 방은 하나였습니다.

한계도 적습니다. 의원별 표결은 열린국회정보 원자료를 우리 데이터베이스로 받아 셌고, 소속은 지금 기준이라 김상욱 의원 한 명을 당시 소속으로 되돌려 18명을 맞췄습니다. 불참의 이유는 기록에 없습니다. 결심공판의 주장과 반론은 서울신문·YTN·오마이뉴스·더팩트·KBC 보도에서 옮겼고 공소장과 판결문은 보지 못했습니다. 한덕수·이상민 전 장관의 형량은 1심 기준이고 항소심 결과는 이 글에 넣지 않았습니다. 특검이 주장한 통화 내용은 양쪽 주장을 보도대로 옮겼을 뿐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엔 무엇을 보면 됩니까?

둘입니다. 11월 18일 1심이 장소 변경의 의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그리고 판결문이 ‘결과가 같았다’는 변론을 어떻게 다루는지입니다. 두 번째가 판결문에 적히면, 그날 밤 여유 21명이 법의 언어로 어떤 무게였는지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판결문이 공개되면 다시 읽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추경호 구형은 몇 년이고 선고는 언제입니까?

조은석 내란특검은 2026년 9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 결심공판에서 추경호 대구시장에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징역 20년을 구형했습니다. 추 시장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습니다. 1심 선고는 11월 18일입니다.

추경호 시장은 구형만으로 시장직을 잃습니까?

아닙니다. 구형은 검사가 재판부에 요청한 형량일 뿐 판결이 아닙니다. 보도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야 시장직을 잃습니다. 1심은 11월 18일이고, 항소하면 확정은 그 뒤입니다.

계엄 해제 표결에 국민의힘은 몇 명이 참여했습니까?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은 재적 300명 중 190명이 표결해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18명이 표결했고 90명은 불참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아닌 의원은 192명 중 172명이 표결했습니다.

출처: 열린국회정보 본회의 표결안건·의원별 표결(의안 2206197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2206291 내란 특검법, assembly.db 2026-10-02 조회) ·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5항 · 서울신문 2026-09-30(결심공판·형사합의34부·선고일·108명 중 18명) · YTN 2026-09-30 · 오마이뉴스 2026-09-30(장소 네 차례 공지·통화 2분 5초·최후진술) · 더팩트 2026-09-30 · KBC 2026-10-01(양측 패널 공방) · 머니투데이 2026-05-05·파이낸셜뉴스(연합뉴스) 2026-05-07(한덕수·이상민 구형과 1심) · 비율·교차 집계 강해준.

재무팀에서 결재가 막히면 저는 결재 라인부터 그렸습니다. 누가 서류를 어디로 보냈는지만 그려도 대부분 답이 나왔습니다. 그날 밤 결재 라인은 본회의장 하나였고, 서류가 어디로 갔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 서류가 왜 거기로 갔는지는, 다행히 저 말고 판사가 정합니다.

세어본 조건
근거
열린국회정보 의원별 표결 의안 2206197(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 2024-12-04)·2206291(내란 특검법, 2024-12-12) · 대한민국헌법 제77조 제5항 · 결심공판 보도(서울신문·YTN·오마이뉴스·더팩트 2026-09-30, KBC 2026-10-01) · 한덕수·이상민 구형과 1심(머니투데이 2026-05-05·파이낸셜뉴스 2026-05-07)
계산
국민의힘 18 ÷ 108 = 16.7% · 그 밖 172 ÷ 192 = 89.6% · 190 − 18 = 172 > 151(여유 21) · 190 − 151 = 39 · 교차표 18 = 3+11+4, 90 = 2+75+2+11 · 23 − 15 = +8, 7 − 15 = −8
한계
DB 소속은 현재 기준이라 김상욱 의원 1명을 당시 소속으로 보정 · 불참 사유는 기록에 없음 · 결심 주장·반론은 보도 인용, 공소장·판결문 미확인 · 한덕수·이상민은 1심 형량 · 유무죄 판단 없음(무죄 추정)
출처
열린국회정보(assembly.db 2026-10-02) · 서울신문 · YTN · 오마이뉴스 · 더팩트 · KBC · 머니투데이 · 파이낸셜뉴스(연합뉴스)
강해준 필명

부산 출신. 부품사 재무팀 12년. 지금은 데이터 일과 이 블로그. 주 3회 10km를 달리고 55분 밑으로는 못 내려갑니다.

정정 이력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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