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CPTPP 가입 신청을 올해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결정의 이유보다 순서가 더 마음에 걸립니다. 값은 먼저 치렀는데 물건은 받지 않기로 한 순서입니다.
10월 8일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이 CPTPP 가입을 연내 신청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관계 부처에는 “시한을 정해 놓기보다 진정성을 갖고 농어민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지속적으로 대화할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이틀 전인 6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결론을 정해 놓고 서두르지 말고 원점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는 일본·캐나다·호주·멕시코·베트남·영국 등 12개국이 들어 있는 다자 자유무역협정입니다. 가입은 회원국 만장일치로 정하고, 신청국을 받을지는 해마다 한 번 열리는 장관회의에서 논의합니다. 올해 장관회의는 11월 베트남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한국일보는 이번 지시로 가입 시점이 최소 1년 미뤄진 셈이라고 썼습니다.

‘FTA는 불가피’에서 ‘연내 신청 말라’까지 며칠이었습니까?
9일입니다. 대통령의 말을 날짜순으로 놓으면 이렇습니다.
| 날짜 | 자리 | 말·조치 |
|---|---|---|
| 2025.10.21 | 국무회의 | “한중일 FTA보다는 CPTPP로 접근하는 것이 낫다” |
| 2025.12.19 | 외교부 업무보고 | CPTPP 가입 추진 공식화 |
| 2026.07.16 | 농식품부 업무보고 | 상생기금 부족분 7,000억 원을 정부가 책임지는 방안 주문 |
| 2026.09.28 | 정부 합동 발표 | CPTPP 경제적 영향분석 잠정치 공개 |
| 2026.09.29 | 대통령 X |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 FTA가 불가피 … 너무 걱정 마시기 바란다” |
| 2026.10.06 | 국무회의 | “원점에서 다시 대화를 시작하라” |
| 2026.10.08 | 청와대 브리핑 | 연내 가입 신청 보류 지시 |
2025년 10월 국무회의 회의록에 남은 문장은 분명했습니다. 한일 FTA보다 한중일 FTA, 그보다 CPTPP로 가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정부는 1년 가까이 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9월 29일 대통령은 X에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를 꺼내며 “수출시장 확대를 위해 FTA가 불가피하지만 그 손익에 따른 갈등도 불가피하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9일 뒤 연내 신청을 접었습니다.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저는 숫자에서 찾지 못했습니다. 영향분석 수치는 9월 28일에 이미 나와 있었고, 그 뒤에 바뀐 숫자는 없습니다. 달라진 건 농어민 단체의 반발 강도였고, 6일 국무회의에서는 11월 장관회의에 올리려면 이달 중순까지 공청회 계획을 관보에 공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고 서울신문과 한국일보가 전했습니다. 시한이 닥치자 방향이 바뀐 것으로 저는 읽습니다.

정부 분석으로 늘어나는 쪽과 줄어드는 쪽은 얼마입니까?
9월 28일 산업통상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중소벤처기업부·산림청이 함께 낸 잠정 분석입니다. 발효 뒤 15년 연평균입니다.
| 분야 | 연평균 국내 생산 변화 | 분석 기관 |
|---|---|---|
| 제조업(전후방 연관 산업 포함) | +6조 3,000억~6조 7,000억 원 | 산업연구원 |
| 그중 중소기업 | +1조 1,000억~1조 2,000억 원 | 산업연구원 |
| 농업 | −7,100억 원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 수산업 | −817억 원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
| 임업 | −606억 원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농·수·임업 감소를 더하면 8,523억 원입니다. 제조업 증가분은 그 7.4~7.9배입니다. 다만 재는 방식이 다릅니다. 제조업은 전후방 연관 산업에서 생기는 생산 유발까지 넣은 숫자이고 농업은 그 분야 생산 감소입니다. 그래서 배수는 참고로만 둡니다. 거시 분석으로는 발효 10년 뒤 실질 GDP가 가입하지 않았을 때보다 0.38%p 높다고 나왔습니다(대외경제정책연구원, 10년 누적).
농업 7,100억 원은 2025년 농업생산액 60조 1,000억 원(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망)의 1.18%입니다. 2025년 농림어업총조사의 농가 124만 2,000가구로 나누면 한 가구에 한 해 약 57만 원어치 생산입니다. 실제 피해는 품목에 몰립니다. 호주·캐나다·뉴질랜드와 맞서는 축산, 일본과 맞서는 수산이 앞줄입니다.

왜 줄어드는 쪽 목소리가 이깁니까?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모양 때문입니다. 줄어드는 7,100억 원은 품목과 지역과 얼굴이 있습니다. 한우 농가, 어느 군의 축협, 어느 항구의 선주입니다. 늘어나는 6조 원은 멕시코·일본·캐나다로 물건을 보내는 수많은 제조업체와 그 협력업체, 그리고 수입 소고기와 과일을 조금 싸게 사게 될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 흩어집니다. 한 사람 몫이 작아서 아무도 거리로 나오지 않습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멕시코는 올해 초 FTA를 맺지 않은 나라의 1,400여 개 품목에 50%대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은 멕시코와 FTA가 없고, 일본은 CPTPP로 무관세입니다. 이 차이가 1년 더 갑니다. 관세는 결국 그 물건을 사는 쪽이 냅니다. 부품 회사 재무팀에서 관세 한 줄이 원가율로 들어오는 걸 12년 봤습니다. 장부에선 안 보이는 쪽이 늘 먼저 무너졌습니다.
그렇다고 농업의 걱정이 엄살이라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한 가구 57만 원은 평균일 뿐이고, 축산 농가 한 집에는 훨씬 큰 돈입니다. 개방의 이득을 보는 쪽이 손실을 보는 쪽을 돕는 것 자체는 맞습니다. 떨어진 사람이 다시 설 수 있어야 시장도 유지됩니다. 문제는 돕는 방식입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 7,000억 원은 누가 냅니까?
세금입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2015년 한중 FTA 비준 때 여·야·정이 ‘무역이득공유제’ 대신 합의한 기금입니다. 2017년부터 해마다 1,000억 원씩 10년간 1조 원을 모으되, 재원은 기업의 자발적 출연이었습니다. 현행 특별법도 ‘정부 외의 자’가 출연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모인 돈은 2024년 8월 2,449억 원, 2024년 말 2,642억 원, 2026년 7월 3,255억 원입니다. 목표의 32.6%입니다. 그 3,255억 원 중 민간기업 출연은 1,532억 8,000만 원이고 공공기관이 1,714억 7,000만 원입니다. 자발적 상생기금의 절반 넘게를 이미 공기업이 채웠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모자란 7,000억 원(지금 기준으로 정확히는 6,745억 원)을 재정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2027년 예산안에 2,000억 원을 처음 넣었고 2030년까지 나머지를 넣습니다. 계획대로라면 1조 255억 원 가운데 공공기관과 정부 몫이 8,714억 7,000만 원, 85.0%가 됩니다. 민간기업이 낸 몫은 15%입니다. 정부 출연 근거를 넣는 특별법 개정안(박수현 의원안, 의안 2210482)은 아직 농해수위에 계류돼 있습니다.

여기서 대통령의 진단 하나는 맞다고 쓰겠습니다. 7월 업무보고에서 대통령은 “농민들에게 1조 원 보전을 약속했으니 정부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는 정부의 신뢰 문제”라고 했습니다. 약속을 선의에 맡겨 놓고 10년을 보낸 건 정부와 국회의 잘못이 맞습니다.
그런데 순서를 보십시오. 신뢰를 사려고 세금 7,000억 원을 먼저 약속했습니다. 그다음 신뢰가 아직 부족하다며 개방은 미뤘습니다.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7,000억 원은 납세자가 낸 값이고, 그 값으로 사려던 물건이 이번 결정으로 1년 뒤로 밀렸습니다.
‘수출액에 부담금’은 누구에게 넘기는 비용입니까?
대통령은 9월 29일 “FTA로 인한 수출증가액에 일정 비율의 부담금을 부과해 피해보전을 하면 된다”고 썼습니다. 7월 업무보고에서도 “혜택을 보는 수출 기업들의 수출액 일부를 부담하도록 해서”라고 했습니다. 한중 FTA 비준 때 상생기금으로 대신했던 무역이득공유제와 같은 생각입니다.
저는 여기에 반대합니다. 수출액에 붙는 부담금은 이름만 다른 세금이고, 수출 기업이 실제로 FTA 덕을 얼마나 봤는지는 아무도 따로 떼어 재지 못합니다. 농식품부도 ‘수혜기업을 특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뉴데일리가 전했습니다. 국회 수석전문위원도 비슷한 안에 ‘준조세 성격 논란’을 적었습니다. 돕는 돈은 넓게 걷어 투명하게 주는 편이 낫습니다. 세금으로 주되, 품목 전환이나 은퇴 지원처럼 받는 사람이 고를 수 있는 현금으로 주는 쪽입니다.
이건 여당만의 생각도 아닙니다. 22대 국회에 같은 특별법 개정안이 13건 들어왔고, 그중 2025년 4월 국민의힘 박덕흠 의원안(의안 2210262)도 FTA 수혜기업에 기금 출연 노력 의무를 지우는 내용입니다. 윤준병 의원안(의안 2204882)은 매출액 0.005% 이상 출연 노력 의무에, 모자라면 직전 해 관세 징수액의 1%를 일반회계에서 넣자는 안입니다. 셋 다 계류 중입니다. 기업에 준조세를 걷자는 데 보수 정당 의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건, 보수라면서 왜 그러는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1년 미루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정부 분석을 그대로 믿는다면 발효가 1년 늦어질 때마다 연평균 6조 원대 생산이 1년씩 뒤로 갑니다. 한국경제는 이걸 ‘연 6조 원 기회 손실’로 계산했습니다. 반대쪽에서는 농업 생산 7,100억 원 감소도 1년 늦게 옵니다. 미루는 건 손익을 지우는 게 아니라 시점을 옮기는 일입니다.
걸리는 건 그 1년 동안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가입 심사에만 2~3년이 걸린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말이고, 회원국과의 비공식 협의도 멈출 수 있습니다. 이번 지시에는 ‘언제 다시 하겠다’는 날짜가 없습니다. 청와대 표현대로 ‘시한을 정해 놓지 않는’ 것이 방침입니다. 시한이 없는 결정은 대개 다음 시한이 올 때 다시 미뤄집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의 TPP 관심 표명 뒤에도, 2022년 4월 문재인 정부의 가입 추진 계획 의결 뒤에도 가입 신청서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한국의 CPTPP 가입은 무산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2026년 10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안에는 가입 신청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가입을 논의하는 회원국 장관회의가 해마다 한 번 열리므로 신청 시점이 최소 1년쯤 밀린 셈이고, 가입 여부는 다시 검토한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입니다.
CPTPP에 가입하면 농업 피해는 얼마로 추정됩니까?
정부가 9월 28일 공개한 잠정 분석에서 발효 뒤 15년간 연평균 농업 생산 7,100억 원, 수산업 817억 원, 임업 606억 원 감소입니다. 같은 분석에서 제조업 생산파급효과는 연평균 6.3조~6.7조 원 증가로 나왔습니다.
농어촌상생협력기금 7,000억 원은 누가 냅니까?
세금입니다. 원래 기업 자발적 출연으로 10년간 1조 원을 모으기로 했지만 2026년 7월까지 3,255억 원(32.6%)에 그쳤습니다. 정부는 2027년 예산안에 2,000억 원을 처음 넣었고 2030년까지 나머지를 채울 계획입니다.
손해는 얼굴이 있고 이득은 얼굴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치는 늘 얼굴 쪽에 값을 치릅니다. 이번에는 세금으로 값을 먼저 치르고 물건은 내년으로 미뤘습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한우 값이 내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 하나로는 아무도 거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저도 안 나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