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데려온 일은 잘한 일입니다. 그 일을 두고 대사를 불러들인 일은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이 둘을 따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외교부는 10월 8일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했고, 공식 사과가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한국 정부가 항의의 뜻으로 해외 주재 대사를 불러들인 건 2008년 7월 권철현 주일대사 이후 18년 만입니다. 그때는 일본이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넣은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10월 9일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감사 서한을 보냈다고 공개했고,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소리는 커졌는데 정작 무엇을 놓고 다투는지는 잘 안 보입니다. 그래서 날짜부터 다시 놓아봤습니다.

북한군 포로 송환은 어떻게 이뤄졌습니까?
국가정보원이 9월 3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을 정보위 간사들이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2025년 1월 9일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습니다. 정부는 그때부터 우크라이나와 협의했고, 두 사람은 2026년 9월 중순 자유 의사로 입국했습니다. 국정원은 한국행 의사를 ‘몇 번에 걸쳐’ 확인했고, 송환에 내건 조건도 한국 정부의 지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9월 24일 회견에서 두 사람이 ‘3~4일 전’ 제3국을 거쳐 도착했고, 양국이 6월께 원칙에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대로면 생포에서 입국까지 약 620일, 20개월입니다. 그중 원칙 합의까지가 약 508일, 합의에서 입국까지가 약 111일입니다.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엔총회 공개(9월 23일)에서 대사 소환 결정(10월 8일)까지는 15일이었습니다.

| 구간 | 기간 | 근거 |
|---|---|---|
| 생포 → 송환 원칙 합의 | 약 508일 | 2025-01-09 → 2026-06께(유용원 의원) |
| 원칙 합의 → 입국 | 약 111일 | → 9월 중순(국정원 · ‘3~4일 전 도착’) |
| 입국 → 유엔총회 공개 | 약 3일 | → 2026-09-23 |
| 공개 → 대사 소환 결정 | 15일 | → 2026-10-08(외교부) |
20개월을 들여 데려온 일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정부를 깎아내릴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포로 교환 명단과 외교 일정 사이에서 두 사람이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한 건, 외교관과 정보기관이 할 일을 한 것입니다.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정확히 무엇을 두고 다툽니까?
다툼은 ‘비공개 합의’가 있었느냐, 있었다면 어디까지였느냐입니다. 국정원은 정상 간 합의는 없었지만 외교장관 통화와 대사관·외교부 협의에서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고 보고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다음입니다. 국정원에 따르면 비공개를 먼저 요청한 쪽이 우크라이나였습니다. 러시아와의 포로 교환, 제3국 포로 교환에 영향을 줄까 봐서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10월 7일 ‘비밀유지 방식에 관한 합의의 해석 차이’라고 했습니다. 송환 방식이나 경로가 아니라 한국에 보냈다는 사실만 말했으니 합의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0월 6일 국정감사에서 사과가 담긴 메시지를 받았지만 ‘생각하는 수준과 차이가 있다’고 했고, 이틀 뒤 소환이 결정됐습니다.
정부가 비공개를 고집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북한에 남은 두 사람의 가족입니다. 이건 가볍게 넘길 이유가 아닙니다. 이 대목은 정부가 맞습니다.

포로를 한국으로 보내는 건 국제법상 문제없습니까?
포로의 대우는 1949년 제네바 제3협약이 정합니다. 사람들이 ‘포로 송환 원칙’이라며 드는 118조는 ‘적대행위가 끝난 뒤 지체 없이 석방하고 송환한다’는 조항입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아직 이 조항이 작동할 국면이 아닙니다. 지금 국면에 맞는 건 12조입니다. 억류국은 협약 당사국에만, 그 나라가 협약을 적용할 의사와 능력이 있음을 확인한 뒤에만 포로를 넘길 수 있습니다. 한국은 당사국입니다.
한국 쪽 근거는 헌법 3조입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이고, 그래서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봅니다. 유용원 의원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이들’이라고 말한 건 이 조항입니다.
포로가 갈 곳을 스스로 고르는 원칙에는 우리 역사가 있습니다. 1953년 6월 8일 포로송환협정은 송환을 원하는 포로는 돌려보내고, 거부하는 포로는 중립국 관리 아래 설명을 들은 뒤 본인이 정하게 했습니다. 그 열흘 뒤 이승만 정부는 전국 8개 수용소에서 반공포로를 풀어줬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3만 5,698명 중 2만 7,388명(76.7%)이 수용소를 나갔고 56명이 그 과정에서 숨졌습니다.

‘비공개’는 무엇을 지키고 있었습니까?
여기서 한 번 더 날짜를 놓아봤습니다. 두 사람에 관해 이미 공개된 것들입니다. 2025년 1월 11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생포 사진을 올렸고, 다음 날 심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영상 속 한 사람은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포로 교환을 제의했습니다. 2025년 2월에는 국회의원이 현지에서 두 사람을 만나 한국행 의사를 공개했고, 2026년 2월에는 두 사람이 러시아 측 송환 요구 명단에 여러 차례 올랐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북한 당국이 두 사람의 얼굴과 한국행 의사를 안 지는 이미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9월 23일에 새로 알려진 건 하나, 송환이 끝났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가족에게 얼마나 더 위험해졌는지를 저는 셀 수 없습니다. ‘의사’와 ‘도착’은 북한 당국 입장에서 다를 수 있고, 정부가 그 차이를 무겁게 봤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차이를 놓고 18년 동안 꺼내지 않던 카드를 꺼낸 게 맞는 저울질이었는지는 따로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9월 24일 국회의원 회견에서는 ‘3~4일 전 도착’이라는 더 구체적인 말까지 나왔습니다.
18년 만의 대사 소환, 무엇과 맞바꿉니까?
대사 소환은 관계를 끊지는 않되 냉각을 감수하고 항의하는 조치입니다. 서울신문은 귀임 시점이 미지수이고 우크라이나 지원 사업 재검토까지 거론된다고 전했습니다. 정부는 지원과 이번 일은 별개라고 합니다.
제가 세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쪽입니다. 러시아군에는 지금도 북한군이 있습니다. 앞으로 또 생포되는 북한군이 한국행을 원하면, 그 길은 우크라이나 손에 있습니다. 두 사람은 러시아 측 송환 요구 명단에 여러 번 올랐고, 생포 사흘 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교환을 공개 제안했습니다. 다음 포로가 한국으로 오는 길은 이번처럼 20개월이 걸리거나, 아예 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사 소환의 비용은 외교부가 아니라 아직 이름도 모르는 그 사람이 냅니다.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앞으로 더 이상 북한군 포로를 받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읽지 않습니다. 이번 두 사람을 데려온 게 이 정부이고, 그 의도를 단정할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의도와 결과는 다릅니다. 정치인도 정부도 유인으로 움직이고, 상대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개를 문제 삼아 대사를 불러들이면 우크라이나가 다음 송환에서 얻는 것은 줄고 치를 것은 늘어납니다.
2008년의 소환은 영토 주권이었습니다. 2026년의 소환은 이미 끝난 송환을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의 해석 차이입니다. 같은 수위의 카드를 쓴 두 일의 무게가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경원 의원의 감사 서한은 어떻게 봐야 합니까?
나 의원은 서한에서 ‘리모 씨와 백모 씨의 자유 의사를 존중해 한국행을 허용한 대승적 결정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썼습니다. 이 문장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실제로 감사할 일입니다.
다만 서한을 공개하며 붙인 말은 국내 정치의 언어였습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이재명 정권’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할 말이 아니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할 말입니다.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외국 정상에게 직접 보내면, 상대국은 한국의 입장이 어느 쪽인지 고를 수 있게 됩니다. 협상 중인 상대에게 선택지를 주는 건 장부로 치면 내 쪽 비용입니다.
그렇다고 ‘어느 나라 국회의원인가’라는 반응이 맞는 것도 아닙니다. 국회의원이 정부의 외교 판단에 반대하는 건 권한이고, 반대의 근거가 ‘포로 본인의 선택을 존중하자’라면 더 그렇습니다. 저는 서한의 내용엔 동의하고, 보낸 방식엔 반쯤만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정부는 두 가지를 했습니다. 하나는 20개월 동안 조용히 두 사람을 데려온 일입니다. 저는 이걸 높게 봅니다. 다른 하나는 공개 ‘방식’을 문제 삼아 18년 만에 대사를 불러들인 일입니다. 저는 이걸 낮게 봅니다. 가족의 안전이라는 이유는 정당하지만, 그 안전을 지키는 데 대사 소환이 무엇을 더하는지는 정부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보수입니다. 안보는 단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 차갑게 셉니다. 단단한 안보란 상대국에 얼굴을 붉히는 횟수가 아니라, 다음에 한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기댈 길이 몇 개 열려 있느냐로 잰다고 봅니다. 지금 그 길은 하나 더 좁아졌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납품처와 계약 해석이 갈리면 담당자를 바꾸지 않고 다음 물량 협상 자리에서 풀었습니다. 다음 물량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오기까지 620일, 그걸 두고 다투는 데 15일이 걸렸습니다. 날짜 열 개를 맞추는 데 저도 한나절이 걸렸으니, 외교가 느리다고 말할 처지는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북한군 포로 2명은 언제 한국에 왔습니까?
국가정보원은 2026년 9월 3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9월 중순 자유 의사로 입국했다’고 보고했습니다. 2025년 1월 9일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생포된 뒤 약 620일 만입니다.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포로를 제3국인 한국으로 보내는 건 국제법상 괜찮습니까?
제네바 제3협약 12조는 억류국이 협약 당사국에, 그 나라가 협약을 지킬 의사와 능력이 있다고 확인한 뒤에만 포로를 넘길 수 있게 합니다. 한국은 당사국입니다. 헌법 3조에 따라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봅니다.
주우크라이나 대사는 왜 소환됐습니까?
외교부는 2026년 10월 8일 소환을 결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송환 사실을 유엔총회에서 공개했고 공식 사과도 없었다는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는 합의의 해석 차이라고 봅니다. 항의성 대사 소환은 2008년 7월 이후 18년 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