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907조 1항은 두 문장입니다. ‘운송인은 여객의 연착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다만, 운송인이 자신과 그 사용인 및 대리인이 손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합리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조치를 하였다는 것 또는 그 조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는 것을 증명한 경우에는 그 책임을 면한다.’ 어제 저녁 청주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린 168명이 먼저 읽어야 할 조문이 이것입니다.
10월 10일 오후 7시 반 무렵, 청주에서 제주로 가려던 제주항공 7C227편이 활주로로 나가려고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한 승객의 보조배터리에서 연기와 불꽃이 올라왔고, 옆자리 승객이 옷으로 덮었고, 승무원이 리튬배터리 화재 진압용 주머니에 넣어 불을 껐습니다. 연기가 객실에 퍼져 승객 168명이 전원 내렸습니다. 일부 보도는 배터리를 쥐고 있던 승객이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고 전했고, 배터리가 파우치 안에 있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제주항공은 대체 항공기를 마련해 다음 날 새벽 승객들을 제주로 실어 날랐습니다.
불이 어디서 났을 때 결과가 어떻게 갈리는지는 9월 25일 에어서울 화재 때 따로 썼습니다. 오늘은 그다음 질문을 봅니다. 저녁 비행기를 새벽에 탄 168명의 몇 시간, 연기를 빼고 대체기를 띄운 비용, 손을 덴 승객의 치료비는 누가 냅니까. 상법 항공운송편,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분쟁해결기준, 민법, 제조물책임법을 차례로 읽어봤습니다.

제주항공 보조배터리 화재, 지연 보상은 누가 합니까?
승객이 상대할 곳은 항공사 하나입니다. 승객은 배터리 주인과 운송 계약을 맺지 않았고, 제주항공과 맺었습니다. 상법 907조는 연착 손해를 운송인 책임으로 정하고, 빠져나갈 문은 하나만 열어 둡니다. 항공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 또는 ‘할 수 없었다’를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입증 책임이 승객이 아니라 항공사에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번 일에서 항공사는 아마 이 문을 두드릴 것입니다. 불을 낸 건 승객의 물건이고, 승무원은 바로 껐고, 연기가 찬 객실에서 승객을 내리고 기체를 점검한 건 안전을 위해 당연히 할 일이었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 논리가 꽤 단단하다고 봅니다. 다만 ‘모든 조치’에는 대체기를 얼마나 빨리 띄웠는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제공했는지도 들어갑니다. 저녁 7시대 출발편이 새벽에 도착했다면, 그 몇 시간이 정말 줄일 수 없는 시간이었는지는 항공사가 설명해야 할 몫입니다.
법원이 이 조항을 실제로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는 판결도 있습니다. 의정부지방법원은 2020년 2월 항공편 지연 사건에서 지연 원인과 경위, 지연 시간, 식음료와 담요 제공 같은 대응을 따져 승객 1인당 위자료를 20만 원으로 정했습니다(2019나200684). 이번 일과 사정이 다르니 그 금액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법원이 무엇을 보는지를 보여주는 예로만 적어 둡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으로는 얼마입니까?
소송 말고 합의로 풀 때 쓰는 잣대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시인 소비자분쟁해결기준입니다. 국내선 운송 지연은 1시간 이상 2시간 이내면 해당 구간 운임의 10%, 2시간 이상 3시간 이내면 20%, 3시간 이상이면 30%를 배상하도록 권고합니다. 기상·공항 사정·안전 운항을 위한 정비 같은 불가항력은 항공사가 입증해야 면책된다는 쪽으로 고쳐져 있습니다.
7C227편은 저녁 출발편이 다음 날 새벽에 도착했으니 가장 높은 칸입니다. 운임은 승객마다 다르고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정 하나로만 셈을 보이겠습니다. 운임이 6만 원이면 30%는 1만 8,000원이고, 168명이면 302만 4,000원입니다. 비행기 한 대를 다시 띄우고 연기를 빼고 점검한 비용에 비하면 작은 돈입니다. 그래서 항공사가 다툴 실익이 크지 않은 금액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기준은 이름 그대로 ‘분쟁 해결 기준’이지 법이 아닙니다. 당사자가 따로 정하지 않았을 때 합의나 권고의 기준이 될 뿐이고, 한쪽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조정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항공사가 불가항력을 내세워 거절하면 승객은 한국소비자원 조정이나 소송으로 가야 합니다. 그때 다시 상법 907조로 돌아옵니다.
상법은 얼마까지 배상하게 합니까?
상법 907조 2항은 한도를 둡니다. 국제선은 여객 1명당 4,694 계산단위, 출발지·도착지·중간 착륙지가 모두 국내인 운송은 1,000 계산단위입니다. 계산단위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입니다. 10월 9일 IMF 고시 1 SDR = 1.35326달러에 10월 8일 원/달러 매매기준율 1,339.2원을 곱하면 1 SDR은 약 1,812원입니다. 국내선 한도는 약 181만 원, 국제선은 약 851만 원입니다.

한도는 상한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늦어서 생긴 손해, 예컨대 못 쓴 제주 숙박비나 놓친 일정의 비용을 증명한 만큼만 받습니다. 그리고 3항은 항공사 쪽이 고의로, 또는 연착이 생길 줄 알면서 무모하게 행동했다는 게 증명되면 한도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이번처럼 승객 물건에서 난 불을 승무원이 끈 경우에 이 3항이 걸릴 일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손을 덴 승객은 조문이 다릅니다. 상법 904조는 사망이나 신체 상해는 그 원인이 된 사고가 ‘항공기상에서 또는 승강을 위한 작업 중에’ 일어난 경우에 운송인이 책임진다고 정합니다. 기내에서 다쳤으니 조문의 문턱은 넘습니다. 그러나 불을 낸 게 자기 배터리라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자기 과실로 생긴 손해까지 남이 같은 무게로 지지는 않는다는 게 민사 배상의 상식이고, 여기서부터는 사실관계를 보고 법원이 정할 일입니다.
불이 난 배터리 주인은 책임이 없습니까?
항공사가 승객에게 배상하면, 그다음은 항공사가 원인을 만든 쪽에 청구하는 구상의 문제입니다. 첫 후보는 배터리 주인입니다. 민법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씁니다. 열쇠는 과실입니다.
국적 항공사들은 4월 20일부터 기내에서 보조배터리를 쓰거나 충전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제주항공은 그보다 앞선 1월 22일부터였으니 어제로 261일째입니다. 그 배터리가 그 순간 무언가를 충전하고 있었다면 과실을 따질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 보도도 충전 중이었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파우치에 넣어 규정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불이 났다면, 주인에게 과실을 묻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 사람도 손을 덴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는 건 배터리를 만든 쪽입니다. 제조물책임법 3조 1항은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으로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배상하라고 정합니다. 과실이 없어도 결함이 있으면 지는 책임입니다. 3조의2는 정상적으로 쓰던 중 생긴 손해이고 결함 없이는 보통 생기지 않는 손해라는 걸 피해자가 증명하면 결함을 추정합니다. 리튬배터리가 가방 속에서 저절로 불이 났다면 이 추정이 쓰일 여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3조 3항은 제조업자를 알 수 없으면 그 물건을 판 사람이 배상하게 합니다. 이름 없는 수입 배터리라도 판 곳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누가 냅니까?
조문의 순서와 돈이 실제로 흐르는 곳은 다릅니다. 항공사가 승객 168명에게 배상하고, 대체기 비용과 기체 점검 비용을 떠안고, 그 뒤 배터리 주인이나 제조사에 구상하려면 결함과 과실을 증명해야 합니다. 타 버린 배터리 하나로 그 증명을 해내기는 어렵고, 소송 비용이 받을 돈보다 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은 항공사가 비용으로 처리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항공사가 처리한 비용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보험료로, 진압 장비와 승무원 훈련비로, 결국 운임으로 모든 승객에게 조금씩 나뉩니다. 싸고 출처 모를 배터리를 산 사람이 그 위험의 값을 다 치르지 않고, 같은 비행기를 탄 167명과 그 항공사의 모든 승객이 나눠 냅니다. 경제학에서 외부효과라고 부르는 일입니다. 공짜 점심은 없고, 이번 점심값은 엉뚱한 사람들이 나눠 냈습니다.
공항이 걸러내는 숫자를 보면 그 위험이 얼마나 많이 비행기 문 앞까지 오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용선 의원실이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국제공항공사 자료로 공개한 바로는 2025년 3월부터 2026년 8월까지 보안검색에서 규정 위반이나 승인 없는 보조배터리가 60만 8,370건 걸렸습니다. 하루 1,108건입니다. 걸리지 않고 규정대로 실린 배터리는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봅니다
저는 이번 비용을 승객 168명이 떠안아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고, 상법은 그래서 입증 책임을 항공사에 지웠습니다. 항공사가 ‘할 만큼 했다’로 면책을 주장할 수는 있지만, 그 주장은 증거로 해야 하고 승객은 그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이 권고하는 30%는 항공사가 다툴 실익도 크지 않은 금액입니다.
그다음 비용, 항공사와 그 뒤의 모든 승객이 나눠 내는 몫은 원인을 만든 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원인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불이 난 배터리가 어느 회사 제품인지, 몇 년 썼는지, 인증을 받았는지를 아무도 공개하지 않습니다. 국토교통부가 해마다 내놓는 건 규정의 개수이고, 불이 난 배터리의 이력이 아닙니다.
저는 규정을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 이 기록을 남기고 공개하는 쪽이 낫다고 봅니다. 불난 배터리의 제조사가 드러나면 항공사는 구상할 곳이 생기고, 제조사는 품질에 돈을 쓸 이유가 생기고, 승객은 무엇을 사야 할지 알게 됩니다. 위험의 값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장부로 돌아가는 것, 저는 그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인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 글에 덧붙이겠습니다.
1,000 SDR을 원화로 바꾸려고 IMF 환율표와 매매기준율을 나란히 띄워 놓고 곱셈을 했습니다. 181만 원이 나오는 사이 아침에 내린 커피가 다 식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보조배터리 화재로 비행기가 늦어지면 보상받을 수 있습니까?
상법 907조로 항공사는 연착 손해를 배상해야 하고, 합리적 조치를 다했다고 증명해야 면책됩니다. 공정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국내선 3시간 이상 지연에 해당 구간 운임의 30%를 권고합니다. 강제력은 없어 항공사가 거절하면 소송이나 한국소비자원 조정으로 갑니다(2026년 10월 기준).
불이 난 보조배터리 주인도 배상해야 합니까?
민법 750조는 고의나 과실이 있을 때만 배상하게 합니다. 기내 사용 금지를 어기고 충전하다 불이 났다면 과실이 쟁점이 되지만, 규정대로 보관했는데 배터리 결함으로 불이 났다면 제조·수입업자가 제조물책임법 3조로 책임질 몫이 커집니다.
국내선 지연 배상에는 한도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상법 907조 2항은 출발·도착지가 모두 국내인 운송의 연착 배상을 1인당 1,000 계산단위(SDR)로 묶습니다. 10월 9일 IMF 환율과 10월 8일 매매기준율로 약 181만 원입니다. 실제로는 증명한 손해만큼만 받습니다.


